rough sketch 9.00


터널 속에서의 옅은 잠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오빠와 소녀의 잠든 머리가 지하철의 반동에 맞춰 한 방향으로 흔들렸다. 열 정거장을 홀로 달려가는 전동차 안에서 갈대처럼 출렁이던 머리, 머리, 머리통들. 까마득한 졸음 속으로 빨려들 듯 말 듯 노곤해진다. 육십사분의 일, 삼십이분의 일, 십육분의 일. 얼마나 지났을까. 고개를 들어 보니 대전역이었고, 나는 눈을 비비며 승강장으로 빠져나왔다.

  대전역과 영화와 서점에서의 즐거운 오후 한때는 짓눌려 뭉개졌다. 극장에는 관객 대신 빨간 시트가 씌워진 의자와 모서리가 부서진 계단들이 빼곡했고 서점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냥, 후덥지근했다. 바깥으로 나오니 좀 살 것 같았지만, 지하철에 몸을 싣자마자 다시 죽을맛이었다.
  용문역쯤 와서 자리가 났다. 어르신들이 너무 많았다. 열 정거장을 서서 갔다. 잠은 오지 않는다.
  창 너머를 바라봤다. 지하철의 떨림은 버스의 그것에 비해 덜 격렬했고, 어찌 보면 경미한 정도였다. 밖의 어둠이 흔들리는지 아닌지, 어둠의 무늬와 결이 달라지는지 그대로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내'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몇십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낯선 곳에 도착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꼬리뼈 언저리가 간질거렸다. 터널은 길게 길게 이어졌다. 다음 역은 아직 멀다. 이 곳은 아직 어느 곳이라 이름붙일 수 없는 어떤 곳인지도 모른다.
  앞좌석의 대학생이 음료수 캔을 꼭 움켜쥐고 졸음에 겨워 꾸벅거리고 있었다. 잠도 깸도 아닌 어떤 곳을 흔들리는 머리통이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시나몬이라는 이름의 헛소리 :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흔히 체온이 과잉되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것은 거짓 체온이다. '타인들'은 당신에게 절대로 온기를 나누어 주지 않는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인구과잉지역을 피하라. 거짓 체온 속에서 당신은 자일리톨에 둘러싸인 충치균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글루스 가든 - 제대로 된 글 쓰기.

by 시나몬 | 2009/02/04 20:08 | 생명연습 | 트랙백

L워드 시즌2 : 11




시간이 없는지라 간략한 리뷰는 집어치우고 캡쳐 몇개만.



우월한 제니님

1시즌엔 제법 정상인같은 면모를 보여주다가 2시즌 들어서 폭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애정도는 떨어지기는커녕 수직상승중.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이야기.
(하지만 극중에서는 상당히 불친절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느낌은 좋다만)





바로 요 전 장면(SM샵에서 대성통곡)에선 의도한 연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멜빵에 스니커즈 차림의 제니가 어쩐지, 어린아이처럼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오버랩. 학대받았던 어린 시절에 여전히 구속당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고 만다.


시즌 2 오프닝 : 너넨 어떻게 잘 될 생각은 없는거니

둘이 사귄다고 해도 쉐인의 바람기+제니의 똘끼 탓에 제대로 된 연애는 못할 듯
하지만 난 그런 커플을 사랑하니깐 ^*^ 애증과 위태로운 관계 핥핥 (아예 취향으로 굳어진 듯)

"둘이 이미 애증사이인데 괜히 애먼 여자 끌어다가 간보는거임" 이라던 네이버의 모님이 떠오르는군.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쉐인이 아무리 "내 룸메하곤 안자!" 라고 말해도 솔직히 누가 믿겠음?
6시즌까지 스포당한 지금은 좀 일찍 사귀지!!.....라며 절규중. 그래도 결과는 똑같았으려나.






by 시나몬 | 2009/01/30 10:55 | paranoid park | 트랙백 | 덧글(1)

will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서 부끄러워하는 건 이제 그만두겠다.

나는 앞으로 수백번 모험을 시도하고 수십번 안에서 밖으로 거듭날 생각이다. 변하겠지. 하지만 언제든 간에 나는 나일 뿐이다.

나는 지금의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과거의 어리고 미숙했던 나 또한 사랑한다.

by 시나몬 | 2009/01/30 10:17 | 생명연습 | 트랙백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